728x90

민수기 14장에서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사실을 보고했고, 2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이 보고한 사실은 오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1절에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 2절에 '능히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아낙자손'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절부터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랬듯이 그 사실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너는 알라 =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지식, 믿음을 가져라 입니다. 

3절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서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아멘!!

 

사실과 현실을 직시하는 눈은 중요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면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과 현실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 또 누구에게로 가지고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사실앞에 나를 본다면 원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사실 앞에서 앞서가시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대입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는다면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가룟유다 안에 악한마음을 심고,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팔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죄를 사하셨고 승리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경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음 역시도 승리로 가는 관문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뒤집을 수 있는 인간의 현실과 문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3절에 하나님께서 앞서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앞서 가셔서 그 악한 민족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곧 정복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하지 말라"(4절)라는 말을 하면서 '착각을 하지 말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는 가나안 민족의 악함 때문(4)이었고, 둘째는 전적인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 때문이었다(5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다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이렇게 자신의 실체를 모르면, 늘 자신이 옳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거역했던 일(7절)을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살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늘 거역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앞서가시고 판단을 앞서가시고 내 계획과 결정에 앞서가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앞서가시면 내 연약함을 가려주시고 죄악을 덮어주시고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나의 어떠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바라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맹세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 그분보다 큰 이름이 없기에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입니다.

9장 5절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가복음 10장 32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실 때 제자들은 두려워했고 염려했고 도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죄악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순종하시고 앞서가시고 십자가에 달렸을 때 모든 죄악은 그 위에서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앞서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으로 그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운 제자들 조차도 그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공로와 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홀로 앞서가셨습니다.  우리는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만이 공의로우심을 고백하고 나아갈 때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공로 의지하지 맙시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앞서가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앞서 가시도록 내어 드립시다. 그리고 우리는 신실하게 따라갑시다. 주님 앞서가시옵소서 따르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내 삶에 앞서가시는 주님앞에 내 삶을 드립니다.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728x90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